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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오늘의 말씀

탕감받은 자의 고백

마 18:21-23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23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묵상 해설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계를 정하고 싶었습니다. 일곱 번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관대한 제안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흔 번의 일곱 번이라고 하십니다. 사실상 무제한입니다. 이것은 용서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시는 당혹스러운 명령처럼 보입니다.

23절부터 이어지는 비유의 핵심은 탕감입니다. 일만 달란트는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그것을 탕감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의 빚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용서의 기술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먼저 얼마나 큰 탕감을 받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죄의 빚은 일만 달란트보다 크고, 그것을 십자가로 탕감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 때 타인을 향한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용서는 내 관용의 크기가 아니라 받은 은혜의 크기에서 흘러나옵니다.

오늘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그 관계 앞에서 먼저 내가 탕감받은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용서는 상대방이 그럴 자격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그보다 더 큰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나누는 것입니다. 탕감받은 자의 삶이 곧 용서하는 삶입니다.

어려운 단어
- 일만 달란트: 평범한 노동자가 수만 년을 일해야 갚을 수 있는 천문학적 액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진 죄의 크기를 상징합니다.
- 탕감: 빚이나 죄를 면제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없애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묵상 기록
1 베드로가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라고 질문한 것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21-22절)
2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의 대비가 나의 죄와 타인의 잘못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나요?
3 오늘 내가 용서해야 할 관계가 있다면, 탕감받은 자로서 어떤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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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도해요

"하나님, 저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입니다. 그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작은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탕감이 제 삶에서 용서로 흘러나오게 해 주십시오. 오늘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관계 앞에 탕감받은 자의 마음으로 설 수 있게 하옵소서. 그 용서가 오늘 저의 삶에서 은혜의 증거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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