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감받은 자의 무게
마 18:21-23
베드로는 꽤 너그러운 질문을 했어요. 일곱 번이나 용서하면 되나요? 당시 랍비들은 세 번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일곱 번이면 충분히 관대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계산을 뒤흔들어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 490번이 끝이 아니에요. 용서에 숫자를 매기지 말라는 뜻이에요. 용서는 한계를 정하는 게 아니라는 선언이에요.
그 이유가 비유로 나와요. 만 달란트는 당시 노동자 6만 년치 임금이에요. 갚을 수 없는 빚이에요. 그런데 왕이 탕감해줬어요. 그 탕감받은 종이 나가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목을 잡아요. 백 데나리온은 백 일치 임금이에요.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빚이에요. 이 비유는 거울이에요. 보는 사람마다 불편하게 만들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 종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는 만 달란트예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지불하신 그 대가예요. 그 용서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면, 백 데나리온의 상처를 붙잡고 있기 어려워요. 용서는 내 감정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내가 받은 탕감의 크기를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돼요. 만 달란트의 은혜가 백 데나리온의 상처보다 크다는 사실이 용서의 출발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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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도해요
"하나님, 저는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예요. 그 은혜의 크기를 잊을 때 작은 상처도 크게 느껴져요. 제가 받은 용서를 기억하게 해 주세요. 그 무게가 저를 눌러 용서하게 만들지 않고, 그 은혜가 흘러넘쳐 용서가 자연스럽게 되게 해 주세요. 오늘 마음에 붙든 상처를 내려놓을 용기를 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