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탕감받은 자의 고백
마 18:21-23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말씀 앞에 마음을 준비해요.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제 마음과 삶을 비춰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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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묵상 기록
베드로가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라고 질문한 것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21-22절)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의 대비가 나의 죄와 타인의 잘못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나요?
오늘 내가 용서해야 할 관계가 있다면, 탕감받은 자로서 어떤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계를 정하고 싶었습니다. 일곱 번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관대한 제안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흔 번의 일곱 번이라고 하십니다. 사실상 무제한입니다. 이것은 용서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시는 당혹스러운 명령처럼 보입니다.
23절부터 이어지는 비유의 핵심은 탕감입니다. 일만 달란트는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그것을 탕감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의 빚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용서의 기술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먼저 얼마나 큰 탕감을 받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죄의 빚은 일만 달란트보다 크고, 그것을 십자가로 탕감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 때 타인을 향한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용서는 내 관용의 크기가 아니라 받은 은혜의 크기에서 흘러나옵니다.
오늘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그 관계 앞에서 먼저 내가 탕감받은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용서는 상대방이 그럴 자격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그보다 더 큰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나누는 것입니다. 탕감받은 자의 삶이 곧 용서하는 삶입니다.
함께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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